부령김씨유래

제목 부안 부령김씨 유래
작성일자 2021-05-20
조회수 723

부령김씨(扶寧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님을 시조(始祖)로 모시는 600여 본관(本貫), 1,000여만 신라김씨(新羅金氏)의 종가성씨(宗家性氏)이다. 대보공(大輔公) 칠세손(七世孫)인 미추왕(味鄒王)이 김씨로서는 처음 신라 13대 왕에 즉위하신 후, 신라역사 56왕 992년 중 38왕 586년 동안을 다스리다가 서기 935년 경순왕(敬順王) 9년에 국세가 쇠잔함으로 나라를 지탱하기 어려워 경순왕께서는 고려(高麗)에 양국(讓國)하니 태자이신 일(鎰)님께서는 양국을 반대하셨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니 죽방왕후 박씨(竹房王后 朴氏) 태자비 김씨(太子妃 金氏), 그리고 두 아들과 충신, 의사, 유민(忠臣, 義士, 遺民) 등 수만명을 거느리고 설악산 근처 인제군 상남면 금부리(金富里) 부근에 신라소국(新羅小國)을 세워 조국광복을 도모하고자, 항려 투쟁을 벌이시다가 형세(形勢)가 불리하자 태자공은 마의(麻衣)를 입고 개골산에 들어가 초식을 하시며 은거(隱居)하셨으니, 이분이 곧 태자이신 일(鎰) 마의태자(麻衣太子)로 부령김씨(扶寧金氏)의 관시조(貫始祖)이시다.

태자공의 曾孫이신 상서공(尙書公)(諱 : 景修)께서 처음으로 고려 문종(文宗:1067-1082)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 우복야(右僕射) 벼슬에 오르시고 그 아들 춘(春)님께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우시니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책봉(冊封)되어 부령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기에 본관을 부령으로 정했다. 그 후 조선조 태종 16년(서기 1416)에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합쳐 부안군(扶安郡)이 되자 부안김씨(扶安金氏)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본관은 부령이다.(대한민국을 한국, 코리아라고 부르는 이치)

그로부터 자손들이 계속 고려조에 높은 벼슬을 지내셨으니, 경수(景修)님의 육세손 문정공(文貞公)(諱 : 坵)께서는 고려 고종 19년(1232) 22세에 문과에 합격, 그 후 정원부사록(定遠府司錄), 제주판관(濟州判官),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첨의부찬성사(僉議府贊成事), 보문각태학사(寶文閣太學士), 정당문학사(政堂文學士), 판판도사사(判板圖司事), 세자이사(世子貳師) 동수국사(同修國史) 참문학사(參文學士)를 역임하셨다.

문정공께서는 수많은 시와 글을 남겨 지포집(止浦集)외에 많은 문집을 발간하였으며, 도동서원(道東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셨다. 제주판관으로 계시는 동안 “돌문화(文化)”를 개척 제주도민의 생활 문화 향상에 큰 업적을 남기시어 1991년 6월에 제주 민속 박물관에 “돌문화의 은인”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문정공의 네 아들중 큰 아드님 충선공(忠宣公)(諱 : 汝孟)이 두 아들을 두셨으니 큰 아드님 상서공(尙書公)(諱 : 恪)과 둘째 아드님 이부상서 좌승지공(吏部尙書 左承旨公)(諱 : 軾)이시다. 좌승지공(左承旨公)은 좌승지공파((左承旨公派)로 분파(分派)되었다. 앞의 상서공(尙書公)의 손자(文貞公의 玄孫) 대제학공(大提學公)(諱 : 龍壽)은 두 아들을 두셨으니 큰 아드님이 중랑장공(中朗將公 : 仁鼎)이요, 다음이 시승공(侍承公)(諱 : 信鼎)이시다. 시승공은 시승공파(侍承公派)로 분파되어 전주를 비롯 충남일대에 세거 하여 번창하였다.

대제학공의 큰 아드님 중랑장공(中朗將公)(諱 :仁鼎)께서는 네 아드님을 두시니 큰 아드님 봉정대부(奉正大夫) 한성소윤(漢城少尹)(諱:世英)께서 소윤공파(少尹公派)로 분파하여 그 후예들이 종사랑공파(종사랑公派) 장사랑공파(장사랑公派) 진사공파(진사公派) 승의랑공파(승의랑公派) 등 사파(四派)로 분파되었다.

둘째 아드님 봉정대부 지고부군사(奉正大夫 知古阜郡事)(諱 : 光敍)께서 군사공파(郡事公派)로 분파(分派)하여 그 후예들이 시직공파(侍直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직장공파(直長公派) 등 오파(五派) 분파되었다.

셋째 아드님은 전의소감(典儀少監)(諱:光信)으로 소감공파(少監公派)로 분파되었고, 넷째 아드님 보승낭장(保勝郎將)(諱 : 光矩)은 낭장공파(郎將公派)로 분파되었다. 우리 부안김씨(扶安金氏)는 현재 13대파(大派)와 그 밑의 53소파(小派)로 나누어져 각지(各地)에 정착(定着)하고 있으니 모두 12만 종족(宗族)에 달한다.

여기서 후예들이 자랑으로 삼을 것은 우리 시조이신 마의태자공의 조국 광복의 애국심을 꼽을 것이오. 다음에는 중시조(中始祖)이신 문정공(文貞公)은 어려서부터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고 시문(詩文)에 능하여 사람들이 신동(神童)이라 하였으며 출사(出仕)하여서는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애국심(愛國心) 민본(民本) 정치(政治)의 길, 자신뿐 아니라 네 아들을 모두 문과(文科)에 급제 하도록 한 학구열 등 공의 정신은 “고려 평장사 문정공 지포 김구(高麗 平章事 文貞公 止浦 金坵)의 이름으로 부령김씨 아니 민족의 역사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다.

세 번째로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여 이씨 조선이 개국할 때 “소윤공”“군사공”“소감공” 할아버지들께서는 ”지조가 있는 사람으로써는 새로운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며 삼형제가 같이 고향에 돌아와 권세와 영화를 버리고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셨다. 또한 시승공(侍承公) 할아버지의 후예들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셨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사마시(生員進士科)에 118분 음사자가 83분 문무과(大科)에 100여분이 급제를 하시어 수많은 석학(碩學)과 청백리(淸白吏) 등을 배출하셨으며 오늘날에는 각계 각층에 학자 기업가 관료들이 활동하고 있어 국사 사회에 이바지 하고 있는 명문 거족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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